2013 3                                                                                                            인터뷰어: 이진명(큐레이터)

 

1. 이지현작가는 2000년도부터 줄기차게 풍경에 매진해왔다. 풍경을 다룸으로써 성취하려는 바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에 대해 듣고 싶다.

 

-내가 그려 온 겹친 공간들의 풍경은 내 공간을 찾는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갖지 못한 공간에 대한 열망을 내가 보았던, 혹은 보았다고 생각되는 공간에 대한 기억들이 기록되면서 그 연관성의 실마리를 풀어 화면 안에서 섞음으로써 비로서 구축되었고 관객이 바라볼 때 그 안에 보는 사람의 기억이 또 얹어지면서 보는 이에 따라 달리 보이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회화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업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회화라는 매체가 어떤 피사체에서 기인하는 작업이 아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는, 2차원의 화면에서 다차원의 세계를 열 수 있는 최첨단 재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억은 망각되거나 의식적으로 조작되어 변질된 기억들을 사실로 믿게 된다고 하는데, 내가 몽상에 빠져 떠오르게 되는 편집된 일상 기억의 편린들을 그 기원이 무엇인지 쫓아가다 보면 연관되어 파생되는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게 된다그 이미지들이 어떻게 상관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해 회화라는 매체를 가지고 가시화 시켜 연구하는 것이 내 작업이다

 

내가 그린 화면 속에 이미지들이 때론 이해하기 힘든 물리적 상관관계들로 이루어져 보는 이로 하여금 혼돈을 초래하지만, 그 혼돈은 어딘가에서 본듯한 의식 속 공간을 찾아가는 작업을 하는 나에게는 사실 무엇보다 현실을 반영한다.

 

Threshold-Mirror(2012), Threshold_Sand Castle(2012), Knitting sandy beach(2012), Beehive(2012)등의 작품에서 보면 기억의 혼재에서 기인한 사고의 과정을 공간의 중첩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섞이는 현상에 집중해 화면 안에 주로 등장하던 물리적 건축구조를 생략하고 그물형태라든가 벌집구조, 또는 불규칙하지만 연결성이 있는 패턴인 모래사장 위에 발자국, 뜨개질 할 때 볼 수 있는 한 줄로 된 네트구조 등의 구조들을 다른 이미지들과 중첩시켜 표현하였다. 이는 시작점을 알 수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평소 습관들을 형상화해 나타낸 이미지이다.그 시도는National G.+Sandcastle(2009), Threshold-Sandy Beach_1(2011)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다 최근 다시 구조를 화면에 넣고 그 안에 구도에 관한 이야기 개인사를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시도와 과거 작업에 대한 확인을 반복하면서 작업의 큰 기둥에 가지가 쳐지는 것이다.

 

2. 2000년대 초반에는 드로잉 연구에 기량과 에너지가 밀집되었던 것 같다. 이후 2000년대 중반에 비로소 명확한 주제와 형식이 완결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연구(Study)’라는 제목으로 물결이라든지 건물의 외곽 드로잉을 다시 시작한 것 같다. 여기서 앞날의 새로운 작품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매우 좋았다. 드로잉 작업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영화 <Shine>에 나오는 한 장면에서 카메라가 음악대학 연습실 건물을 멀리서 클로즈업하면서 움직인다. 각각의 연습실에서 흘러나오는 연주들이 혼합되어 카메라 렌즈가 인-아웃을 함에 따라 소리의 강약도 조절되지만, 기본적으로 겹쳐있는 소리들이 묘한 공간의 움직임을 주도한다.

 

드로잉은 당시 일상의 기억들이 겹쳐지는 현상을 유영하듯 쫓아 가던 이미지들의 기록이었는데, 겹쳐지는 장면들의 지금의 페인팅보다 시간적으로 빠르게 완성되어 의미표현이 잘되는 형식이었다.

 

이번 전시에 소개하는 <Fantasma>시리즈는 10여 년 전 드로잉 작업과는 조금 다르다.

사유의 과정과 고민을 집약하여 담아낸 작업들인 작은 크기의 회화그룹들을 종이에 그린 드로잉들과 차별을 두기 위해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들은 페인팅의 한 부분으로 작업한 작품의 모티브를 너무 잘 보여주는 연구작이라서 그 동안 발표를 꺼려왔던 것 같다. 실제로 이 작업들은 시간이 걸리는 150호 이상의 대형회화들을 벽에 기대어 작업할 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잡아두려고 옆 이젤에 세워두고 노트하듯 그리는 에스키스 같은 그림, 이미지 에세이들이다.

 

3. 미술이라는 장르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다. 가령 미술을 하기 때문에 단순히 미술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고, 진정 소수이긴 하지만 미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 타고난 미술가를 말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드물어지고 있다고 한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미술은 다른 예술영역과 다르게 누구든 시도할 수 있는 분야다. 특히 현대미술이 그렇지 않나. 그럼에도 질문에서처럼 두 가지로 미술가를 나누게 되는 건 현대에 와서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옛날과 달라져서는 아닐까? 시대가 달라져서 라는 얘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가 혼자 그 모든걸 발표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4. 위와 비슷한 이야기인데 중요한 질문이 있다. 어느 제약회사에서 놀라운 다이어트 약을 개발했다고 치자 그런데 상품 개발연구부장 A씨와 제품 판매부장 B씨 사이에 굉장한 불화가 생겼다고 한다. A씨는 개발자의 양심상 약의 효능과 부작용을 정확히 제품용기에 표기하라고 건의했는데 판매부장 B씨는 부작용 부분을 아주 작게 축소시켜 표기했으며 오히려 효능을 과장하고 그럴듯한 용기 디자인으로 엄청난 판매수익을 얻었다고 한다. 이때 회사의 주인은 그 어떤 판단도 하지 못할 것이다. 양심과 실익이라는 중차대한 문제가 평행선을 그릴 때 어찌해야 하나에 대한 질문이다.

 

-그건 양심의 문제일 것이다. 아무리 장사꾼의 마인드라 해도 나의 경우라면 그 생각과 다르다.

역으로 묻고 싶다. 가령, 어느 작가가 3-4년 전에 완성한 작품의 연도 수를 속여 신작인양 전시회에 걸었다고 치자. 작업을 했을 시점보다 현재의 사회이슈와 그림의 내용이 맞아 떨어져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을지는 몰라도 자신을 속인 양심과 그걸 알아챈 동료작가에게 그는 더 이상 어떤 것도 기대하기 힘들지 않을까.

 

5. 제약회사의 문제처럼 예술가에게 같은 평행선이 존재한다. 미적 선례(aesthetic precedent)를 철저히 분석하여 자기가 미술계에서 새로이 발현시킬 형식이 있는가를 끊임없이 타진하는 작가집단이 있다. 이들은 미술계의 거의 90%에 육박한다고 믿는다. 이들의 고민은 제약회사의 판매부장의 고민과 비슷하다. 반면에 자기가 처한 시대와 자기 실존을 진정으로 고민하는 작가집단도 있을 것이다. 이지현 작가는 작가로서 이 두 가지 다루기 힘든 난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야 하는 연령에 진입하고 있다.

 

-그걸 해결하는 것이 작업이다. 어느 쪽으로 해결을 볼 것인가의 연구와 과정 그리고 결과물.

 

6. 현재 뉴욕에서 작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로서 느낀 뉴욕이라는 미술계는 어떠한가? 생산적이고 생명력이 넘치는 곳인가 아니면 거대 미술관과 갤러리만이 즐비한 최종 소비지이며 작가 창작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곳인가? 그런 것들이 알고 싶다.

 

-뉴욕이란 곳은 궁금한 작품들이나 전시, 자료들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이점 정도이지,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는 서울과 다를 점이 없다.

나에게 있어 장소라는 조건은 작업을 하는데 있어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어디서든 작업실의 문을 닫으면 현실과 분리된 내 공간이 진공관처럼 형성된다.

 

[아기울음소리, 남편의 다급한 움직임들을 뒤로한 채 크레마가 풍부한 커피 한잔을 들고, 이 집에서 가장 추운 벽난로 뒤 골방으로 들어서 성애가 낀 작은 유리창과 나무살이 있는 문을 닫는다. 익숙해 싫지 않은 특유의 유화 냄새가 진한 커피 향을 뚫는다. ]

2011 11월의 일기

 

7. 위의 질문을 한 이유는 내가 작가의 미래에 굉장한 애착과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여태껏 받아들인 아시아 작가들을 보라. 날리니 말리니가 있다. 아이 웨이웨이라는 이상한 사람도 있다. 무라카미 타카시가 있고 아이다 마코토, 그리고 중국인들이 있다. 기괴한 엽기성이나 이슬람 여성차별 문제, 사회주의의 억압적 정치상황을 다룬 작가들이 아니고서는 설 자리가 없다. 더구나 무나카타 시코라는 판화가를 제외하고 형식주의의 페인터는 한 명도 없다. 작가가 뉴욕에 거주하기에 더욱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부상황에 대해서 태연할 수 있겠는가?

 

-우선 그런 우려를 고맙게 생각한다. 너무나 현실적이고 중요한 문제이나, 작업을 하느라 자기 안에 갇히다 보면 자칫 무감각 해 질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것 보다 무감각해지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일 테니까.

나는 오히려 선례가 없기 때문에 도전이라는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대미술에 와서 깜짝 놀랄 만큼 좋은 그림은 이제 그 내용이 사회적으로 이슈를 낳을 만큼 자극적이어서도 아니고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가 놀랄 만큼 어떤 것을 표현해 내서도 아닐 것이다. 미술은 아주 느리게 움직이지 않나. 주변에서 많이 보지만, 작가가 어떤 빠른 결론으로 도달하게 되면 그만큼 빨리 잊혀지는 것 같다.

 

오래 봐야 알아챌 수 있게 되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은 분명 다르다. 그들이 원하는 단박에 알아차리는 그림을 그려 유명세를 떨치기 보다는 오래 걸려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그것에 대해 결국 정답을 구하는 건 작가가 아닌 관객, 그들이 될 것이다. 나는 오히려 미국에 와서 내 작업에 대한 세상의 반응을 듣고자 하는 조급증이 덜하게 되었다. 질문에서 말했다시피 온갖 상황들이 난무한 뉴욕에서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직 답을 얻지 못해 시도 중이고 연구중인 내 작업들을 끊임없이 성실히 할 것이고, 그러면서 나를 알리고 보여 줄 일이다.

 

8. 보다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고 싶다. 최초에 작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 계기를 초심으로서 존중하고 있는가?

 

-특별한 계기보다도 어떤 기술에 대해 저절로 알게 되고 잘하도록 연마되면서 그걸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지경이 되었다. 그 소통의 길이 그림일 뿐이다.

 

9. 이지현 작가 자체에 대해 알고 싶다. 작가는 합리적 세계관을 지니는 합리주의자인가 아니면 세계가 신비에 둘러싸였다고 믿는 영성의 인간인가 뭐 이런 것들이 있다. 세계는 진보한다고 믿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세상의 본질은 불변한다고 보는 본질주의자도 있고 반대로 매사를 의심하는 회의주의도 있게 마련이다.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 우주, 인간은 무엇인지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다.

 

-어떤 대답을 하던 멋있게 포장하는 것처럼 들릴 것 같은 이 질문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 않을 것 같으므로 빼는 게 어떨까요.

 

10. 좋아하는 작가와 좋아하는 문필가나 사상가가 있으면 솔직히 말해주길 바란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에게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매우 요긴한 질문이 될 것 같다.

 

-평생 죽도록 고독하게 작업하느라 일생을 어떻게 써버리는 지도 모르는 미켈란젤로. 어떠한 화려한 수식어로도 그가 살아간 흔적을 설명하긴 힘들 것이다.

그의 앞에선 어떤 가림막도 작업을 하는 데 있어 문제삼지 않았던 이 광기 어린 예술가는 사랑도 잘 모르고 죽기 전까지 작업을 했는데, 난 그런 광기를 넘고자 하는 건 아니나 모든걸 져버리고 작업만 하는 그의 모습이 아닌, 작가가 가져야 하는 윤리라는 게 작가가 어디에 있든 모든 주변 상황들을 수용 해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건 현대에서도, 어떤 인류의 시대에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임을 보여주고 싶다.

 

 

구토가 날 것 같은 사르트르의 글들은 어렵지만, 사상을 좋아하고, 카프카의 소설을 좋아한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단편집도 작업하면서 자주 읽는 편이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몽상에 대한 예찬이 듣기 좋고, (Carl Gustav Jung)의 이론은 프로이트의 것보다 내가 생각하는 무의식의 해석과 더 가깝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은 작가가 무슨 책을 읽는 지에 관해 궁금해하기나 할까? 차라리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그 얼굴이 오히려 궁금하지 않겠나.

 

11. 앞으로의 계획, 이른바 퓨처 플랜이라든지 그것이 너무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럽다면 공인이 아닌 사적 인간으로서의 소소한 계획이라도 있다면 말해주었으면 한다.

 

-나는 원격으로 조정가능 한 작업실을 각기 다른 도시에 운영하고 싶다. 하나는 브루클린, 뉴욕에 하나는 서울, 한국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북유럽이나 동유럽의 도시 중 하나로 말이다.

작업은 내가 어디서 하든 똑같이 진행 될 것이다. 어디에 머물 든 그 안에서 나의 가족은 언제나 행복한 그림일 것이다.

 

12. “그저 네 자신을 개선시켜라. 그것이 네가 세계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이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언이다. 한국미술은 70년대 미니멀리즘의 운동이 성과를 얻어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형성시켰다. 이후에 80년대 민중미술,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붐에 예술사회가 휩싸였다. 2000년대 드디어 사적 실존과 개인적 관심이 존중을 받을 수 있었다. 사회적 혁명이나 변혁보다도 개인이라는 개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우리사회에 바야흐로 생성된 것이지요. 사실 이지현 작가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의 총아라고 할 수도 있다. 이제 데뷔한지 10년이 넘었고 애정을 받는 위치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로 이행한 것 같다. 자신의 책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맞다.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나 내 고민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에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은 건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취향으로는 왜 예술가가 사회적인 문제를 화두로 작업을 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니까. 하지만 그건 작가가 그 시대에 맞는 시대상을 고민하지 않는 다는 말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무한 긍정주의 사고를 가진 사람은 결코 아니지만, 개인을 향한 어떠한 사회적 편견이나 선입관도 작가가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다. 주변 상황이나 자신의 환경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작업에 영향을 줄 수 있겠으나, 오히려 그런 점이 얼마든지 작업의 내용을 깊이 있게 하고 절실함으로 작업에 의미를 녹여낼 수 있질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를 바라보는 작가들이 있다면 앞서 말한 일들을 실천해 나가는 나를 지켜보게 하는 일이 어깨를 무겁게 하는 책무라기 보다는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일종의 소명 인 거 같다.

 

13. 솔직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